본문내용 바로가기
주메뉴
패밀리사이트
홈으로가기
검색버튼
전희숙
"그림자 노동이지만 지금이 제일 좋아"
전희숙님의 이미지

전희숙은 1967년 초가집이 즐비한 광주 서구 광천동에서 칠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이북 출신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 가족들과 함께 힘겹게 문구용품 부업 일을 하여 생계에 보탬이 되었다.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송원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엘지이노텍에 입사한 후에도 부업은 이어졌고 자신의 봉급마저 생활비로 대부분 갖다줘야 했다. 돈 한 푼 편히 쓸 수 없는, 회사와 가정 양쪽의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던 마음으로 일곱 살 연상의 마음씨 착한 남편을 만나 5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사글셋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으레 결혼하면 퇴사하던 분위기 속에서 7년 일했던 직장을 그만뒀다. 아이를 낳고 제빵 일을 하는 남편을 따라 순창으로 갔다.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남편이 제과점을 열기 위해 광양으로 이주했다가 가게 자리가 전날 나가버리는 바람에 부식 가게를 시작하게 되었다. 몇 년 후 아파트 상가를 분양받았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운영했던 부식 가게가 제법 장사가 잘돼 돈을 모으긴 했으나 분양 잔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우여곡절 끝에 입주는 했으나 IMF 여파로 대출 금리가 10% 넘게 올라 버렸다. 장사는 잘 됐지만 대출금을 갚느라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빚을 다 갚고 나서 상가를 분양받고 광주 광산구 운남동으로 이주해 부식 가게를 운영하다가 2011년 사업을 접었다. 1년 후 다시 일을 하고 싶어 알아보던 중, 전국가정관리사협회에서 교육받고 일을 시작하게 됐다. 2014년 다른 가사 관리사들과 함께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면서 사회보험에 가입하기 시작했고 2019년에는 이사장이 된 후 교육자료를 만들어 신규 가사 관리사들을 전문적으로 교육해 고객과 가사 관리사 양쪽 모두의 인식 변화를 꾀했다. 전국 가사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 끝에 2022년 가사 노동자 법이 통과되어 기쁘기는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대기업이 뛰어드는 경쟁 속에 신규 가사 관리사의 유입이 줄어들고 퇴사자는 많아지면서 운영이 어려워지는 중, 2024년 6월 전국가정관리사협회가 해산했다. 고령자들이 대부분인, 협동조합의 운명 역시 얼마 남지 않은 걸 느끼는 한편, 이대로 지지 않고 다시 꽃피우게 되기를,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는다.

구술채록 김강현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