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숙은 1958년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에서 태어났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3남 1녀 중 장녀로 자랐다. 마을의 또래 청년들과는 남녀 구별 없이 즐겁게 어울려 놀았다. 친정어머니는 그런 박정숙을 ‘선머슴’이라고 꾸짖곤 했다.
박정숙은 결혼할 생각이 없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여기저기 선을 봤다. 결국 1985년 선본 지 한 달 하루 만에 결혼했다. 박정숙은 1986년 첫딸을 낳았지만, 게으른 남편과는 도저히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서로 이혼하기로 합의했다.
1987년경 친정의 도움을 받아 광주 광천동에 핫도그 가게를 차렸다. 여차저차 남편과 재결합했고, 1988년에는 둘째 아들을 낳았다. 남편은 개인택시도 몰았지만 일을 잘 하려 하지 않아서, 박정숙이 백화점 판촉 행사를 뛰고 마트에 다니며 돈을 벌었다. 엄마니까 당연히, 다 그렇게 한다고 생각했다.
2001년 남편은 용봉동에 꼬치구이 집을 차리자고 했다. 꼬치구이가 뭔지도 몰랐고 두려웠지만 꽤 잘 됐다. 일곡동에 호프집을 하나 더 차려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2007년에 호프집들을 정리하고 용봉동에 구이집을 열었다. 그때부터 빚이 불어나 힘겨운 시간을 보냈고 2014년경 가게를 놔두고 나와서 가사노동자 일을 시작했다.
가사노동자 일을 시작할 무렵에는 ‘내가 이런 일도 한다’는 생각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일도 손에 익지 않았고, 가사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돈 받은 만큼 해줘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성실히 일 해왔고, 지금은 요령이 붙어서 6~7년 동안이나 관리하고 있는 정기 고객도 생겼다.
2016년경에는 가사노동자 동료들과 난타 소모임을 시작했다. 북을 두드리니 스트레스가 풀리고, 동료들과 공연도 다니고 대회도 나간다. 박정숙은 가게를 할 때 1년 365일 쉬기는커녕 저녁노을도 못 보고 살았지만 지금은 하루 8시간만 일하고 오후에는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 새로운 삶을 얻은 것만 같다.
2024년 현재, 아직도 가사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남아 있지만, 박정숙은 가사노동자로 일하면서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를 찾았다. 나이 먹을수록 더 삶이 만족스럽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하고 싶다.
구술채록 이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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