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주메뉴
패밀리사이트
홈으로가기
검색버튼
"삼교대 끝나면 녹초가 되어도 일하기 싫다는 생각보다 내 할 일이다 했지"
고인선님의 백터 이미지

1935년생인 고인선님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열다섯 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오십이 넘은 어머니와 갓 육 개월 된 남동생을 돌봐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열아홉 살 때, 전남방직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몇 번이나 헛걸음을 했다. 입사를 포기할 즈음, 6.25 때 집에 피란을 왔던 전남방직 병원장네 식모 아가씨를 통해 구인 소식을 접하고 달려가서 시험을 쳤다. 어렵게 입사한 기쁨도 잠시, 방직회사 업무는 코피를 쏟을 만큼 무척 고된 일이었다. 그렇지만 오로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양동시장에 들려 인부들을 먹일 반찬거리를 사 들고 집으로 갔다.
스물두 살 때, 사촌 형부의 소개로 만난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기숙사에 살면서 주말부부 생활을 했다. 2년 후, 첫 아이를 가지고 만삭 때까지 교대근무를 하다가 퇴사했다. 이로써 전남방직과 인연이 끝난 줄 알았지만,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 생활고 때문에 재입사했다. 기혼이라는 이유로 정규직보다 훨씬 월급이 적은 임시직으로 채용되었으나 한푼이 아쉬운 상황인지라 그저 감지덕지했다. 오히려 남편의 사업이 망하면서 자식들을 부양하고 교육시키며 겪었던 생활고가 전남방직 근무보다 더 힘겨웠다.
가족들은 “그렇게 몸 바쳐 뒷바라지해준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노고를 인정해주며 고마워한다. 평생 자신을 거쳐 간 인생의 파도에 성실하게 임했던 고인선은 여든일곱 나이에도 쉬지 않고 소일거리 삼아 일주일에 사흘은 노인 일자리로 일하며 노년을 보내고 있다.

구술채록 김강현・이정선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