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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복
"뼈가 노그라지게 일해서 자식들 다 가르쳤지"
박수복님의 이미지

박수복(1943년생/양동시장/식당/경력 54년)
박수복은 1943년 나주 금천면 신천리에서 2남 1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때 구장을 하였기 때문에, 1950년 한국전쟁 때 인민군(빨치산)에 시달리다가 온 가족이 광주로 걸어 나왔다. 여덟 살 때였다. 부모님은 어려운 형편에도 아들들을 학교에 보냈으나 딸이 공부하는 것은 반대했다. 박수복은 스스로 공민학교를 찾아가 배웠고, 1953년(11세) 광주수창국민학교 편입 시험에 합격했다. 공부 잘하고 키 크고 활달한 덕에 여자로는 드물게 반장까지 했다. 하지만 1954년(12세)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옆집 아주머니를 따라 서울로 애 보기를 하러 가면서 학업은 중단되었다. 공부가 제일 재밌었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그 길로 나가지 못했다.
1955년(13세) 양동에 있는 개인 방직공장에 취직했다. 밤에는 계림동 야학에서 쪽잠을 자가며 공부했다. 1959년(17세)에는 전남도시제사공장 입사 시험에 합격했다. 공장에 다니면서 친구의 오빠와 7년간 연애하고 결혼했다. 시집살이가 매우 고됐다. 남편이 서울로 도망가는 바람에 목숨을 끊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죽을 각오로 살자고 마음을 고쳐먹고 광주공원에서 군고구마장사를 시작했다. 이후 장사하기 좋은 양동시장으로 이사해 동태, 과일, 열무 등을 수레에 끌고 다니며 팔았고, 좌판을 사서 잡화 장사를 시작했다가 복개 상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1980년(38세) 5·18 때는 함께 계모임을 하던 시장상인 언니들과 주먹밥을 싸서 날랐다. 임신 중인 것도 모르고 매일 시위에 나가던 와중에 4개월 된 아이를 유산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에 영창식당을 개업했다. 현재 가게 일은 대부분 며느리와 셋째 딸에게 넘겼지만, 나물 다듬는 일만큼은 여전히 스스로 한다. 뼈가 녹아내릴 만큼 힘들게 살았지만, 다섯 아이 모두 대학까지 가르친 것은 큰 보람이다. 건강하게 소일할 수 있고 함께 배드민턴 치고 이야기 나눌 친구들이 있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봄날이다.

구술채록 이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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