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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순
"평생 이 좁은 칸을 짊어지고 살았다"
정명순님의 이미지

정명순(1960년생/양동시장/한복/경력 41년)
정명순은 1958년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에서 3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보수적이면서도 엄격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평소 근면 성실한 학교생활을 했으며 적극적인 성격으로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순창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양재를 배우고 있는 동네 언니의 소개로 광주로 나왔다. 손재주가 좋으니 학원에 다니지 않고 몇 차례 특강 정도면 좋겠다는 조언대로 광주 충장로 어느 의상실을 소개받아 양재를 배웠고 훈련을 위해 여러 의상실에서 보조로 일했다. 남동에서 자취하다가 가깝게 지내던 동네 의상실 언니의 시동생을 소개받게 되는데 그가 바로 남편이다. 1년 정도 연애 기간을 거쳐 1981년에는 결혼을 해서 계림동에 200만 원짜리 전세방을 얻어 살림을 시작했다. 당시 시어머니는 양동시장에서 잔심부름과 집안일을 돕는 식모를 두고 한복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식모가 공장에 다니는 친구를 따라 나가 돌아오지 않는 바람에 엉겁결에 시어머니의 한복집으로 출근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시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면서 장사를 도왔고 그런 중에도 끼니때가 되면 따로 사는 시아버지의 밥을 지어다 날랐다. 살림은 따로 하지만 눈을 뜨면 시어머니가 있는 한복집으로 향해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했다. 월급이 따로 있지도 않고 받는 용돈도 없어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 결혼이나 친정 제사에 참석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할 만큼 엄격한 시집살이였다. 여든 살이 되어서야 뒷방으로 물러난 시어머니의 한복집을 그때부터는 혼자 경영하며 어엿한 사장이 되었다.
빠르게 진행된 핵가족화와 한복 대여점 등장이 옷을 짓고 사는 데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젊은 시절 양장을 배웠던 덕에 개량 한복, 현대식 한복을 잘 짓는 것을 장점으로 삼는다. 긍정적인 성격과 오래된 장사 비법을 갖고 있기에 전통예술을 하는 예인들이나 특별한 직업 종사자들에게도 꽤 인기 있는 집이라는 자부심도 있다.

구술채록 장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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