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8 | 관리자 | 조회 821
우리사회 빨간불, 성평등교육이 해답
김경희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광주지부장)
2023년 7월 10일 대한민국. 지난 8년동안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안된 아이의 숫자가 2236명, 사망확인 27명, 897건은 수사의뢰. 어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뒤 성폭행하려고 시도한 20대 남성 구속,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묻지마 폭행…. 기막힌 사건 사들의 연속이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 현재 우리사회가 어떤 문제에 직면해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사회는 관련 법령에 따라 이미 의무적으로 또는 주기적으로 성평등교육과 성교육 ·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젠더폭력 예방교육을 통해 성희롱과 성폭력, 성매매, 가정폭력 예방교육을 받고 있다. 학교와 일터에서 의무화된 젠더폭력 예방 교육은 대표적인 성평등교육 정책 중 하나이다.
성평등교육은 남성과 여성에 관한 생물학적 의미의 성(sex), 사회학적 의미의 성 (gender), 성적인 의미의 섹슈얼리티(sexuality)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 소외, 편견을 해소하고 서로의 가치를 동등하게 여기며,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향유하도록 돕는 교육이다.
우리사회에는 여전히 성별과 종교,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신체적 조건이나 외모에 따른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 이러한 차별 가운데 가장 뿌리 깊은 것은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다. 오랜 성차별의 역사 속에서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폭력은 시대가 변해도 그치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물론 성폭력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자리잡고 있어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활동 등에 영향을 미친다. 성차별은 단지 여성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지역사회의 문제이고 시민사회 전반의 건강성에 관한 문제이다.
남녀불평등 구조가 견고하다 보니 학교라는 공간이 건강하고 온전할 리 없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성장기를 맞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가정 다음으로 안전한 보호막 역할을 해야 하지만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성희롱과 성추행 사건도 성인지 감수성 제로인 사회의 축소판인 것이다. n번방으로 통칭되는 성범죄와 일베에서 유행시킨 성혐오적 단오들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성평등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는 답을 내놓지만 가부장제가 견고히 뿌리내린 문화속에서 성차별의식이나 성별고정관념은 쉽게 변할 수 없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부정의한 이런 의식을 전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지속적인 교육인 것 같다.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 관련 주요 국민 의견’ 요약자료에서 ‘성 관련 용어 및 문장 기술에 대한 수정 요구’의 내용을 사회, 도덕, 보건, 실과, 초등통합 등 여러 교과에 걸쳐 기술했다. 그 내용은 성소수자 용어 삭제,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수정, 동성애와 성전환 관련 내용 제외, 낙태 관련 내용 삭제, 양성 이외의 성으로 해석될 수 있는 용어 삭제, 성적 자기 결정권이나 재생산권 용어 삭제, 성인지감수성이나 젠더, 정상가족신화 용어 삭제 등이다. 차마 일일이 그 부당함을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교육과정의 개정 의견은 차별적이고 혐오적이다.
성평등한 교육과정, 다시 말해 성평등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한다. 세상에 단 두 개의 성별만이 있다는 거짓을 재생산하는 '양성평등'이 아닌 '성평등'을 사용해야 하며 '성 소수자'나 ‘LGBT’, '트랜스젠더' 등 성 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교육해야 한다.
지자체 교육청은 학교 성교육 기본계획을 기반으로 매년 모든 학생 대상 연간 15차시 이상의 성교육을 편성·운영(성폭력 예방교육 3차시 이상)하고 있다. 그러나 기말시험이 끝난 뒤 방학을 코앞에 둔 날을 잡아 거의 하루종일 성교육을 실시한다든가, 정결교육에 기반한 생리학과 발달심리학에 기초한 보건교육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현장에서의 성교육이 아이들에게 성평등한 인식을 심어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매년 실시하는 양성평등교육과 학교폭력 예방교육 또한 내용이 반복적이고 중복되는 게 많아 학생들은 교육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이날은 노는 날이구나’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실 있는 성평등교육, 아이들이 피부로 느끼는 성평등교육이란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성평등교육의 내용이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해 이미 시대착오적인 교육이 되어버렸다. 이미 아이들이 다 알고 있는 생리학적 접근에 그치고, 성폭력 · 성희롱 · 성매매 예방교육이 반복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뻔한’ 내용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학생들은 현실을 반영한 실제적 내용의 구체화, 다양화가 실현된 교육을 받기를 희망한다.
포괄적 성평등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지도교사의 의지와 개인의 역량차에 의해 학교별 격차가 생기는 성교육은 지양되어야 하고, 대한민국에서 공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일정정도 수준의 성인지감수성이 체화될 수 있도록 성평등교육 표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성평등교육 표준안은 학령, 학교급, 지역, 학교상황에 맞추어 적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매뉴얼 역시 제시되는 한편 지도교사의 역량강화에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아무리 교육을 잘한다고 해도 외부에서 접하는 왜곡된 정보들의 영향를 차단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외부의 폭력적, 차별적 영상들을 걸러내고 분별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을 양성하는 교육 또한 필요하다. 말로 설명하는 교육보다는 영상을 활용한 교육, 영상교육보다는 게임, 토론 등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참여식 교육방법으로 또래와의 성평등한 관계 맺기와 함께 성평등의식을 인간존중과 생명존중의식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학생들의 질문을 토대로 정보를 제공하거나 토론을 하는 방식은 제한된 교육내용의 한계를 극복하고 학생들의 관심사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성평등교육은 차이를 이해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성평등공동체 실현을 위한 생애주기별 체계적인 교육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성평등교육을 통해 젠더의 평등을 이야기하는 밑바탕에는 인간애가 있다. 인류 역사상, 서로 다른 종교, 민족, 피부색, 성별, 그리고 성정체성에 이르기까지, 상대가 나, 우리와 다를 수 있다는 다원성의 부재는 혐오를 넘어, 세계 각지의 전쟁처럼 폭력을 확산시키고 있다.
성평등은 성역할, 성차별, 성정체성을 넘은 평등과 인간애를 향한 인류의 방향이다. 대한민국에서 함께 사는 국민 모두가 성인지감수성이 풍부해 질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하여 제대로 된 성평등 교육이 의무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