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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12월] 안티 페미니스트 백래시; 다원예술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페미니스트

2023-11-29 | 관리자 | 조회 505

안티 페미니스트 백래시;

다원예술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페미니스트


신민 작가

 

 

미술작가인 나는 2021년에 한 공공기관의 다원 예술 작품 제작 지원금 공모에 지원했다. 그 공모제도는 좀 특이했는데, 공모에 지원한 지원자들, 즉 동료 심사를 통해 지원금 수혜자를 선발하는 방식이었다. 그 당시 나는 러시아 고전 희곡의 주인공을 지금의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연극을 만들겠다는 내용의 서류를 제출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럽지만, 당시의 나는 제작비가 절실해서 공모서류 그 어떤 곳에도 페미니즘의 도 적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원금 심사에서 줄줄이 탈락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자 심사위원 심기를 건드리지 않아야 제도의 혜택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인권과 평등의 슬로건으로 가득한 예술계가 사실은 백래시에 엄청나게 절여져 있는 판이라는 것을, 8년 동안의 지원금 심사 탈락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래서 지원금 공모 서류를 작성할 때마다 가상의 남자 심사위원을 정해놓는 버릇이 생겼다. 그가 읽기에 불편하지 않게, 나의 기획안이 페미니즘 예술로 안 보여지게. 순하게 작성하자. 왜냐고? 여성문제 이야기를 적으면 매 번 떨어져서다. 사회문제를 적는 것은 괜찮지만 여성과 사회 문제를 적으면 심사위원들이 잘 안 뽑는 것 같아서다.

 

작업하는 데 돈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험실 쥐가 미로를 학습할 때 틀린 길로 가면 전기충격을 받고 맞는 길로 가면 치즈를 받는 것처럼, 나는 어느새 백래시에 순응하는 답을 택하려 애쓰는 쥐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나는 페미니즘 이라는 단어 사용을 자제하며 내가 하고자 하는 기획안을 적어서 제출했다.

 

얼마 뒤 공공기관으로부터 동료 심사위원들이 내 서류를 보고 작성한 평가지를 받았다. 내 서류에 페미라는 글자가 하나도 안 들어가 있으니 동료심사위원들이 괜찮은 평가를 해주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아마도 남성 동료 심사위원들이었을 그들은 내 기획안에 적혀있던 여성 노동자라는 단어를 트집 잡아 나의 기획안에 대해 모욕적인 코멘트와 매우 낮은 점수를 주었다. 아래는 그 중 충격적인 코멘트들의 내용을 일부 정리한 것이다.

 

-기획안을 보니 작가가 페미성향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작가가 올바른 예술을 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잘못된 가치관으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 예술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없다.

 

-이런 극단적으로 한쪽 성향이 강한 사업에 지원을 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편향적인 가치관을 가진 작품을 지원할 시, 예술지원사업 자체에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울 수 있다.

 

-제발 여자,남자로 가르지 말기를 바란다.

-인간에 대한 평등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고, 그걸 자신의 이득에 활용하지 말고 또한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득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제발 니편 내편 가르지 말기를.

 

-다원예술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페미니스트로 보임

 

 

이러한 백래시를 대비해 조심(?)해서 서류를 제출했건만, 서류에 여성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결국 나의 기획안을 본 동료심사위원들은 내가 페미니스트로 보인다는 이유로 동료 심사에서 0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었다.

 

악플 테러나 다름없는 코멘트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프면서도 또 한편으론 예술을 하는 동료라는 집단이 페미니스트를 욕으로 쓰는 현실을 목도하곤 웃음이 났다.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과연 지원금 심사에 통과할까?

 

이 와중에 저 마지막 심사평, <다원예술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페미니스트> 라는 문장은 마음에 쏙 들었다. 저 문장 속에는 예술하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백래시의 모든 에센스가 고농도로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원예술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페미니스트.”

모든 예술은 다원예술이다. 그런데 저 동료 심사자는 나의 기획안을 보고 내가 여성이 확실하다고 판단, 아마도 나를 예술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무식한 여자라고 맨스플레인 하기 위해 다원예술의 의미를 전혀 모른다고 적었고, 화룡점정으로 일부 남성들이 인터넷 상에서 여성에게 구사할 수 있는 최고의 욕설, 페미니스트!를 붙였다. 문장 전체에서 넘쳐흐르는 글쓴이의 뒤틀린 우월감까지. 완벽한 문장이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현실을 이보다 더 잘 반영한 문장을 본 적이 없다.

 

작업해야해

 

하지만, 여전히 시의 적절한 문장, <다원예술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페미니스트>를 제목으로 한 작업을 만들려고 2년째 고군분투 중인데, 저 제목을 넘어서는 서사를 생각하는 게 쉽지 않다. 백래시로 절여진 세상에서 남자들은 답이 없어.’ ‘그들과 상종하지 말아야 해.’ ‘그냥 다 뒤졌으면.’ 같은 결론이 아닌,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린 어떻게 해야 할지, 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현실에서 여성들은 계속 여자라는 이유로 살인과 폭력과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고, 이에 관해서 제대로 된 법과 제도도 없다. 매일 미디어에서 보도하는 페미사이드 범죄들을 보며, 성범죄 재판 방청연대에 가서 무죄 혹은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판검사들과, 가해자를 열심히 변호하는 전관예우 변호사들을 보며, 몸이 움직이지 않고 머리가 멈춰버린다. 멈춰있는 채로 한참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멈추지 말아야 해. 움직여야 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물컵을 잡는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양말을 신고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을 사먹고. 기분을 환기시켰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나는 분노하는 모습의 여성들을 조각한다. 눈에 구멍을 낸 소녀상들 속에 향을 피워 성범죄 피해 아동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내가 일하던 패스트푸드점의 프렌치 프라이 포대로 저임금 고강도 서비스직에 밀집되어 있는, 검정 머리망을 한 여성 노동자 군상을 만든다. 차별과 혐오에 당당히 No를 외치자 는 의미의 문구가 적힌 유토 원형 두상 300여 점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며,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내가 삐라를 뿌리기 위해 백래시 가득한 작가들의 책 사이사이에 내가 일일이 그린 종이 삐라를 숨겨놓는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거지 같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내 작품을 보고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금, 페미니스트가 욕설이 된 시대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고 연대한다. 힘내서 삶을 살아낸다. 존재한다. 너무 힘이 들때는 지옥같은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내다 보면 언젠가 나는 <다원예술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페미니스트>라는 한 편의 극을 완성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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